이완구 전 국무총리 별세...향년 71세

이완구 전 국무총리 별세...향년 71세 ​ ​ 개인적으로~~~~! 정치 지도자들의 ~~지역의 편중성이 지역발전의 불균형을 가져왔다~~~! ​ 그중에서도`~~충청권과 강원,전북은 한사람의 대통령도 배출하지 못한 정치적 소외 지역이다 보니~! ​ 충청출신의 걸죽한 정치인 이완구가 총리로 발탁 됐을때~! 내심 기대가 컸다~~! 그런데~~의외의 사태가 발생했다~~! ​ 같은 충청출신 기업인이`~~! 돈몇천 만원 정치 자금을 이완구 총리에게 주었다고~~ 언론에 고발하면서~~이완구는 재임이 가장 짧은 총리가 되었다~~! ​ 더구나 충청권 출신 기업가는~~자살하기 직전에~~이완구 이름를 거론하며`~! 충청인출신 정치거물을 정치권에서 물러가게한 것이다`~! ​ 수억 받은 사람들은 멀쩡한데~~! 이완구를 권좌에서 물러나게한 액수는`~! 고작 정치자금 3천만원 이였다~~! ​ 요즘 50억을 받고도 떳떳하다는 마당에~~! 71세이면~~~나이도 아직 젊은데~~~! 그죽음이~~참으로 아쉽다~~! ​ ​ 충청권 대표적 정치인...혈액암 재발 투병생활 ​ 고(故) 이완구 전 국무총리 ⓒ뉴시스·여성신문 ​ ​ 충청권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혔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.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. ​ 이 전 총리는 2012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증을 진단받은 후 골수이식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가 최근 혈액암이 재발하며 투병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. ​ 고인은 한때 '포스트 JP(김종필 전 국무총리)'로 불릴 만큼 충청권의 대표 정치인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 원내대표로 의정활동을 했다. 이후 국무총리직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. ​ 충남 홍성 출신인 고인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잠시 근무했다. 이후 치안 분야로 옮겨 31세 나이로 최연소 경찰서장과 충남·북지방경찰청장도 지냈다. ​ 1995년 민자당에 입당하며 정치권에 뛰어들었다.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는 충남지역(청양·홍성)에서 유일하게 당선돼 주목을 받았다. 이어 16대 국회 재선도 성공해 신한국당 당대표 비서실장과 자민련 대변인, 원내총무, 사무총장 등 중책을 역임했다. ​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됐으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.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 데 반발해 도지사직에서 물러났다. ​ 2012년 19대 총선으로 국회 입성을 노렸으나 그해 초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았다. 이후 8개월간 골수이식과 항암치료 끝에 병마를 극복했다. ​ 이듬해 재보선에서 80%에 가까운 몰표를 받아 재기에 성공했으며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화려하게 복귀했다. ​ 고인은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됐다. '그러나 2015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불거진 이른바 '성완종 리스트' 사건에 얽혀 70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. ​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정치 활동은 원로로 현안 관련 조언을 하는 데 그쳤고 정계에 복귀하지는 않았다. ​ 지난해 총선 당시 자유한국당의 출마 제의에도 "세대교체와 함께 인재 충원의 기회를 열어주는 데 기여하려고 한다"며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계에서 사실상 은퇴했다. ​ 유영혁 기자 press@womennews.co.kr ​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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